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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가난한 이들의 기록 : 신암4동 쪽방지역 재개발·재건축 상황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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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9-03-14 오전 10:56:37

 


- 대구쪽방상담소 소장 장민철

대구지역의 대표적인 노숙인 쪽방 밀집지역으로 대구역과 동대구역이 있다.
대구역은 여전히 공공역사가 가지는 여러 공공시설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과 저녁급식이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점에서 가장 많은 노숙인들이 몰려있으며, 인근에는 오래된 여관, 여인숙들이 길 건너 성내동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다 보니, 노숙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는 공간이다. 특히, 인근에 노숙인종합지원센터, 노숙인일시보호시설, 희망진료소, 무료급식소 등의 노숙인, 쪽방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밀집해있고,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경상감영공원, 국채보상공원 등이 위치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북구 칠성동, 중구 성내동 등이 대표적인 이 지역에는 2000년도 이후 작은 개발과 변화가 있지만 큰 변화는 없는 상황이다.

그에 비해 동대구역은 오래전부터 노숙인, 쪽방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공공역사와 터미널, 역사 인근 공원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그나마 2000년대 초반부터 낮은자리, 범어교회, 쪽방상담소 등의 종교, 시민단체, 복지단체 등이 동대구지하철역 광장을 중심으로 무료급식을 진행하였고, 쪽방상담소, 인의협을 중심으로 무료진료, 현장상담 등이 진행되면서 그나마 거리와 쪽방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을 위한 최소한의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당시 동대구역을 중심으로 신암1동, 신암3동, 신암4동, 신천동 등을 중심으로 30여개가 넘은 여관, 여인숙, 찜질방, 낡은 모텔 등이 쪽방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이들 쪽방에 거주하는 분들은 동부정류장, 큰고개오거리, 동대구역 인근 등 교통요지에 위치한 용역사무실을 통해서 건설일용노동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거나, 인근의 발달된 상업지역에서 행상, 파지수집 등의 단순일자리를 통해서 생활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쪽방주민들이 많을 때에는 200여명에 육박하는 인원들이 생활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적게는 15만원에서 많게는 20~22만원 수준 방값을 지불하고 있었으며, 이 금액은 대구지역의 쪽방 임대료로는 비교적 높은 편에 속했다. 동대구지역의 쪽방은 방값이 비싼 만큼 물리적인 환경은 서구나 중구의 오래된 여관, 여인숙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절반 이상은 개별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난방도 타지역에 비해서는 양호한 상황이었다. 스스로 감당해야 할 주거비용이 타지역에 비해 높았지만, 그만큼 생활에 대한 의지가 높았던 측면도 있었다.

2016년 동대구역은 동대구복합환승센터로 변모했고, 그 외형은 신세계백화점이라는 대구 최대 규모의 백화점으로 치장을 했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기존 동대구고속터미널 인근 지역에 있던 여관, 모텔들 7~8군데가 사라졌으며, 동대구역 무료급식 광장은 폐쇄되었고, 그 대안으로 신천역 인근에 지하 실내급식소가 생겼다. 역을 주변으로 생활하시던 노숙인들은 급식소에는 거의 발길을 끊었고, 그나마 이동이 가능한 인근 쪽방주민들, 그리고 기초노령연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던 홀몸노인들이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공짜 지하철을 이용해서 급식소를 이용하는 상황으로 변화되었다. 제일 먼저 사라진 쪽방지역인 신암3동 지역 쪽방에 거주하던 분들은 다행히 길 건너 신암 4동의 여인숙, 동대구역과 파티마병원 사이에 모텔 밀집촌 등지로 옮겨갔다. 따라서 신암 4동 지역은 여관, 모텔형태의 쪽방들은 방 17~18개 중 빈방의 비율인 공실율은 점차 낮아졌고, 매년 겨울철이 되면, 4층 규모의 모텔 건물들 상당수는 빈 방이 없을 정도로 쪽방주민들이 입주하는 상황들이 몇 년간 지속되었다.

그렇게 동대구역을 중심으로 한 주변 환경의 변화는 2~3년 잠잠하다가 2018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소문으로만 돌던 신암동 재개발, 재건축이 탄력을 받으면서 쪽방건물들의 폐쇄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우리가 늘 다녔던 여인숙, 여관 등의 쪽방들이 또다시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건물주인들은 집값이 상승하면서 서서히 쪽방주민들에게 퇴거를 통보하였고, 쪽방주민들은 아무런 대응도 못한 채, 기한에 맞추어 주변에 비슷한 환경의 1~2만원 좀 더 비싼 곳으로 이동을 했다.

그렇게 야금야금 7~8개의 쪽방들이 2018년 중반에 또다시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져간 주변지역에는 어김없이 유명메이커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라는 홍보 담벼락과 부동산들이 다닥다닥 들어섰다. 신암3동 지역에서 시작된 재개발, 재건축은 동구지역 마지막 쪽방밀집지역인 신암4동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2019년 1월 현재, 이미 방이 15개 이상인 대형 쪽방들 6~7 건물이 폐쇄되었으며, 그 곳에 생활하시던 쪽방주민들은 큰고개오거리 부근, 평화시장 맞은편 등으로 또 다시 이동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옮겨간 곳의 방값이 23~25만원 수준으로, 기존 방값에 비해 비슷하거나 1~2만원 정도만 더 비싸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대구역을 중심으로 그 정도 수준의 가격을 유지하던 여관, 모텔들은 속속 들어차는 쪽방주민들로 인해 이번 겨울 들어서 거의 빈방이 없는 수준까지 되었다. 공실율도 건물당 10%이 되지 않았다. 한 건물에 빈 방이 1~2개 많게는 2~3개 정도가 있을 뿐이다.

신암4동에는 여전히 폐쇄 통보를 받은 쪽방건물이 4개가 남아있으며, 이 곳에는 여전히 40여명의 쪽방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한 달여 남짓 남은 퇴거예정일 안에 또 다른 쪽방을 찾아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동해야 할 시점에는 동대구 주변에 23~25만원 수준의 방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며, 일부는 월세가 30만원 이상 되는 쪽방들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이주 보상비, 이사비' 등 최소한으로 보장되어야 할 어떠한 주거안정과 관련된 보상도 받지 못했으며, 이 곳에 주소지를 두고 수급자로 되어 있는 분들조차도, 거주지가 숙박업소라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건물 주인들은 혹여나 자신들에게 세입자들에 대한 이사비용지불의 책임이 전가될까 조마조마한 표정을 한 채, 건설사 핑계대기에만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이 지역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공공기관, 지역주민을 보살펴야 하는 기초의원 누구도 찾아와 이들에게 대책을 물어본 이는 없었던 것 같았다.

구정이 지나고 2월 하순이 되면, 마지막으로 남은 이들 40여명의 쪽방주민들은 어디론가 이동을 하고, 건물들은 붉은 라카로 폐쇄표시가 된 채, 자물쇠가 굳게 채워질 것이다. 시공사인 화성산업은 천여세대가 넘는 아파트를 지을 것이고, 주변에는 비싼 상권이 형성될 것이고, 수억 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는 돈 있는 누군가의 소유가 되고, 투자, 투기상품으로 거래될 이다.

반면,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 이 곳에 살아왔던 가난한 이들의 삶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퇴거당한, 그리고 퇴거위기에 놓인 100여명 정도의 쪽방주민 모두가 한 겨울을 나고 봄까지 안정된 주거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주거비는 모두 합쳐 봐도 채 1억이 되지 않는다. 수천억 원을 넘는 대규모 공사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이 겨울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방 값 백여만 원조차도 이들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한파에 얼마 되지도 않은 낡은 짐들을 리어카에 싣고 이 곳 저 곳 여관방, 3층 4층으로 초라한 세간살림을 옮겨야만 하는 고단한 삶의 무게를 지우게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최소한 기억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원고를 쓰는 오늘 저녁, 새롭게 옮겨간 몇몇 분들을 만났다. 여전히 그들은 세상을 원망하기 보다는, '예전에 3층 살던 누구가 어디로 옮겼으니 거기로 찾아가서 만나보라', '여기 와보니 아직도 쪽방상담소를 모르는 사람이 2층 제일 끝방에 살고 있는데 방값이 몇 달 밀렸다는데, 이왕이면 온 김에 좀 만나고 가라'고 연신 부탁을 하신다. 방문을 두드리고 만난 이들은 30년 목수 일을 하다가 몸이 아파서 쪽방으로 흘러든 사연, 40년을 노모 모시고 살다 혼기 놓쳐버리고 독신으로 살아가게 된 사연,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향을 떠나 떠돌다가 동대구에 눌러 앉아버린 사연, 어찌됐든 방값은 안 밀리게 하려고, 몇 만원 요금의 휴대전화도 끊고 이 겨울만 지나기를 버티는 사연을 풀어놓는다. 사연 끝에는 뭐가 그리 고마우신지 고맙다는 말씀을 몇 번이고 하시는데, 빈손이 미안해 들고 간 생필품 박스를 방에 내려놓고는, 조만간 다시 들르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얼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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