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인] 훈련소에서 까맣게 얼굴이 타고, 빡빡 자른 머리가 어설프게 자라 밤송이 같았던 부임 첫 날이 벌써 7개월이나 지났네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낯가리며 찾아온 제게 밝게 웃으며 맞아주었던 전임 공보의 김경중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대학 시절의 끝자락, 항상 사고뭉치였고 부족함이 많았던 저는 임상의로써의 수련과정을 거치는 것을 잠시 미루기로 결정하였습니다. 3년 동안 공중 보건의로서 시간을 보내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것을 많이 보고 느끼며 인간적인 면과 개인적인 소양을 더 키우고 싶었습니다. 지역 배치 과정에서 고향인 강원도로 배치받길 원했으나 대학생활을 했던 대구로 발령 받게 되었고, 사회복지기관인 쪽방상담소는 안타깝게도 함께 훈련을 받았던 공중 보건의들 대부분이 꺼려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담소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저 역시 이곳에 배치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지만, 타 지역 쪽방에서의 진료 경험이 있었던 훈련소 동기와 시골 교회에서 목사로서 일하고 계신 아버지와의 상의 끝에 걱정과 기대를 함께 안고 이곳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7개월은 임상경험이 전혀 없는 제게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인수인계를 받으며 처음 참관했던 동대구 현장 진료에서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도전의식도 느끼게 되어 개인적으로 많은 준비를 한 후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한 주 한 주 진료를 해나가면서 지식적인 부족함은 스스로 찾아보기도 하고 선배에게 자문도 구해가면서 채워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찾아오시는 분들과의 상담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이제껏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곳의 환경과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 그리고 저의 미숙함이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일어난 여러 가지 사고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고 좌절한 적도 있었고, 스스로의 미숙함을 자책하기도 하며 이런 순간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세 시간 남짓한 현장 진료 시간 동안 십 수 명의 환자분들을 진료하다 보면 사실 정신이 없습니다. 약주를 드시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환자분이 계실 때는 같이 웃으며 대화를 하면서도,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 환자분들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제대로 된 병력 청취를 하기 위해 이야기 사이에 파고들 타이밍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거친 표현을 너무 많이 사용하셔서 상담하기가 겁이 나는 분도 있었고, 다른 분과 싸운 얘기를 하면서 손을 제 턱 밑까지 몇 번이고 들이미는 분도 있었습니다. 다쳤을 때 상황을 설명하시면서 제 팔을 비튼 분도 계셨네요. 악의가 전혀 없는 이러한 해프닝들 사이에서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가다 보면 간혹 낯익은 분이 밝은 얼굴로 찾아오실 때가 있습니다. 몇 주 전 진료를 받고 호전되었다고 하시며, 대단한 걸 해드린 게 아님에도 고마움을 표해주시는 것을 보면서 힘들었던 마음에 큰 위로가 되곤 했습니다. 지금은 짧은 시간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으며 제 자신도 모르게 생겨난 부정적인 생각들과 위축되었던 마음을 치유하고 있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한분 한분을 더 정성껏 진료하고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면서 그 분들의 신체적 아픔을 치료하고 마음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자신이 이곳에 와서 느끼고 있는 어려움들이 훗날 실력과 인성을 두루 갖춘 의사가 되는 데 초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제가 이곳에 있음이 진료소와 쪽방주민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더욱 성실히 진료에 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