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림상"에서 얻는 교훈 서영관 (매일신문 논설실장) 조선시대 평양감사나 전라감사는 상다리가 휘어지는 밥상을 받았다. 하얀 쌀밥에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서민들은 평생가도 구경 못 할 음식들이 차려졌다. 그러나 정작 전라감사나 평양감사는 자신이 받은 상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지 않았다. 밥과 국 김치 등 기본적인 것만 먹는 게 관례였다. 그러고선 빨리 상을 물렸다. 감사가 물린 상은 다음 순서로 차례차례 내려갔다. 감사나 먼저 상을 받은 이가 이 것 저 것 젓가락질을 해대면 "다 처 먹었다"는 욕이 돌아오기 십상이었다. 감사가 받은 상을 정작 배부르게 먹은 사람은 하급관리였고 그들이 먹었던 상이 지금 한정식의 원조라고도 한다. 물림상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밥상은 아이들이나 여자들의 밥상과는 달랐다. 가장의 입맛을 위해 하다못해 계란 부침이라도 놓았고 생선토막이라도 구워냈다. 그러나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밥상을 깨끗이 비우지 않았다. 계란부침이나 생선구이는 입맛이 별로 없다며 대개 남겼다. 늦은 밤 아버지가 남긴 밥상은 졸음을 참고 기다린 어린 아이들의 몫이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맛난 것을 아이들과 나눴고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기다렸다. 물림상은 삶의 행태가 바뀐 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물림상으로 서로의 허기를 채우며 나눔을 생활화한 것이다. 내 몫을 부하들과 어린 자녀들에게 돌려줌으로써 나눔의 정신을 가르치며 정을 나눈 것이다. 얼마 전 원주의 장애인 교육기관 청원학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했던 대학생이 2년간 받은 월급을 모아 학교에 기부한 일이 있었다. 학교 온수 탱크가 작아서 아이들을 씻겨줄 때 찬물이 나오는 일이 종종 있어 마음이 아팠다는 그는 온수기 구입에 보태달라고 했다. 같이 일한 선생님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할 때 그 대학생은 "나는 고작 100만원을 줬지만 아이들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줬다"며 "아이들에게서 받은 것이 더 많다"고 했다. 지난 여름 노르웨이에서는 극우테러범의 무차별 총질에 77명이 희생되는 초대형 참극이 일어났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다는 사건 후 보여 준 노르웨이 국민들의 관용과 사랑의 자세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나누고 협동하는 문화 전통이 비극에도 초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극찬했다. 나눔과 공생의 정신이 비극을 승화시킨 것이다. 대구는 불통의 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6.25 전쟁 시절 대구에는 전국의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좁은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다 보니 모든 게 부족하고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구 사람들은 피란민들을 내치지 않았다. 대신 작은 것을 나누며 함께 힘든 나날을 견뎌냈다. 그때 대구는 역동적인 도시였다. 가진 건 없지만 정이 넘치는 도시였다. 그 덕에 대구와 경상도 남자들은 "의리의 사나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됐다. 나눔과 사랑은 나와 네가 서로 다른 둘이 아니라 끈끈하게 연결된 하나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나눔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며 지역사회의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 노력해 온 사단법인 자원봉사능력개발원이 이제 15년이 됐다.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며 지역사회에 나눔을 실천해 온 개발원의 정신이 지역사회에 더 크게 물결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