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과 더불어 있을 때 따뜻이 비워있는 사회복지사 대구쪽방상담소 오현주 간사 이즈음 바람이 참 좋습니다. 이렇게 바람이 불면 어린 시절 마을입구 버드나무가 생각이 납니다. 유유자적 흐느적거리는 버드나무는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나오는 나무처럼 내게 자꾸 손짓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는 대구시 파동 버스 종점이었는데요. 그 버드나무 아래 정차해있는 버스가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 옆집에 살던 고모는 동네 구멍가게를 하셨습니다. 버스기사 아저씨들의 담배 가게였지요. 첫차운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사분은 막걸리로 낮술을 거나하게 드시곤 했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나는 풍경은 내가 두 칸짜리 우리 집 마루에 누워서 간유리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짤막하게 생긴 무지개를 손으로 문지르며 스스르 잠이 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앳된 바람이 살랑거리며 좁은 우리 집을 맴돌고 나가곤 했던 것입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집에 혼자 있기 싫으면 옆집인 고모집에서 놀곤 했습니다. 어느 날, 평소에 약주를 자주 하시던 고모부께서 저에게 다가와 “핸주 니는 커서 뭐될래?” 물으셨는데, 서슴없이 “사회복지사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땐 왜 그런 생각이 퍼뜩 떠올랐는지 모르겠어요. 고모부는, “그거 돈 안되고 힘들낀데, 대통령해라 대통령” 그랬지만, 저는 “남을 돕는 게 좋아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 크고 사회복지사를 준비하면서 생각해보니 이런 유년의 기억이 그때 불던 바람처럼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회복지사가 되었고, 여기 ‘대구쪽방상담소’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다시, 제 어린 시절 얘기를 하겠습니다. 다리 하나 건너면 경상북도로 속하게 되던 나의 초등학교는 봄이면 샛노란 개나리가 하굣길을 화사하게 밝혀주었지요. 매년 봄이면 나는 초등학교 1학년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설레곤 했답니다. 우리 집 뒤에는 산이라고 하기엔 낮은 구릉 같은 나의 산놀이터가 있었습니다. 놀이터에는 이름 모를 무덤들이 드문드문 있었는데, 무덤 위를 뛰어 놀다 집에 들어온 날 밤 나는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냇가에서 멱 감고 개구쟁이처럼 그렇게 어린 날들을 보냈습니다. 우리 가족이 북구 칠성동 시내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까지 말입니다. 요즈음 생각으로는 제가 시내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난 뒤부터 자연성과 인간성을 점점 잃어간 것 같습니다. 자연과 가까이 있을 때는 아프지 않았었는데, 도시 한 가운데에서 살게 되니 점점 사막화되는 저를 느낍니다. 살아있는 인간, ‘인간다움’이 사회복지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은 식물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대구쪽방상담소의 사회복지사로서 오현주는 식물에 물을 주듯 사람을 아끼고 돌보며 관심을 가져야하겠습니다. 식물은 말 못하기에 더더욱 귀를 기울이고 사랑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랑으로 가득차고 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텅 빈 가슴이기도 해야겠습니다. 박범신 소설가는 “홀로 있을 때 가득차고 당신들과 더불어 있을 때 따뜻이 비우고 싶다”고 <힐링>이라는 책에 썼습니다. 저도 그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