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소에서의 3년을 돌아보며] 대구쪽방무료진료소 공중보건의 김경중 참 사랑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의과대학에 다니던 시절, 미국에 건너갈 결심을 하고 시험 준비를 위해 공보의로 가기로 진로를 결정했는데 이 작은 발걸음이 이런 시간들을 낳을 줄은 몰랐습니다. 쪽방진료소 근무를 마감하는 금요일, 상담소 식구들이 적어 준 롤링페이퍼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아! 정말 이런 분들과 함께 감사한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하더군요. 쪽방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막연한 기대로 시작한 진료소 생활이었지만, 좋고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겁고 또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로 덜 된 감 같은 제가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책으로만 배우던 공중보건이라는 것이 더욱더 살갑게 다가왔다는 딱딱한 말로 표현되지 않는, 참으로 살 냄새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스쳐지나가는 공보의가 아닌 한 명의 식구로 존중해주시는 상담소 식구들의 따뜻한 마음과, 땀 흘려 아저씨들을 위해 일 하시면서도 늘 뭔가 아쉬워하시고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시는 쉬지 않는 사랑이 참으로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런 식구들의 따스한 관심과 배려 외에도 역시 지난 3년의 시간동안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아저씨들과의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저랑 놀아주신 박신구 아저씨, 장난꾸러기 박문수 아저씨, 멋쟁이 박흥식 아저씨, 늘 반겨주시는 김성태 아저씨, 귀여우신(?) 허대환 아저씨, 은근한 정이 느껴지는 허화수 아저씨, 우리 터주대감 구귀숙 어머니, 시를 좋아하시는 지용철 아저씨...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프고 가슴 아픈 아저씨들도 있고, 방에 누워 한명 한명 얼굴을 떠올려보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자리에 있었나 다시금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예상했던 진료소 3년의 시간들은 공공보건에 대한 경험과 진료능력 향상 같은 것들이었건만, 3년이 지나고 제게 남은 건 이런 추억들과 그리움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배운 것도 참 많았지만, 사람들과의 그 인연을 얻은 것이 더 컸다고 할까요? 어제 밤에는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EBS채널에서 월드비전 사람들이 나와 아프리카 대륙의 시에라리온이라는 나라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턱까지 눈물이 흐르고 있더군요.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한참 잊고 있었던 감정이었습니다.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공부에 치이고 실습 일정을 쫓아가느라 다른 이들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던 까닭에 어느새 제 가슴 저 아래에서 흐르는 샘이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진료소에 늘 오시는 아저씨 한분이 계십니다. 신구 아저씹니다. 아니 이제 형, 삼촌 이렇게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다보니 이제 환자인지 아닌지도 헷갈리는 분이 한분 계십니다. 그 분이 늘 제게 갖은 구박 아닌 구박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늘 항상 한결 같은 모습으로 다각도로 다양하게 구박을 해주시기 때문에 그 내용이 하나하나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ㅎㅎ) 듣다보면 다 ‘책 그만보고 사람을 좀 보라.’는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자원봉사능력개발원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3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자원봉사능력은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이 사랑을 개발하는 곳, 저처럼 삶에 쫓겨 메말라버린 가슴들에게 사랑의 샘을 터뜨리는 그런 법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제가 진료소에 처음 부임하며 하나님께 받았던 말씀으로 다음을 기약해볼까 합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십시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낮고 천한 사람들의 벗이 되십시오. 스스로 잘난 체 해서는 안 됩니다.(로마서 12장 15-16절)